에릭 로메르 도덕 시리즈 3탄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 1969>
로메르의 도덕 시리즈를 보다 재미있게 보기 위해선, 그가 말하고 있는 '도덕'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도덕이란 무단횡단을 하면 안된다, 커닝을 하면 안된다 등의 도덕이 아니라 16~18세기 프랑스에서등장한 모랄리스트들이 연구했던 사상을 말한다. 두산백과에 의하면 모랄리스트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도덕가’라는 뜻도 있다. 16세기에 《수상록》을 쓴 몽테뉴를 필두로 모랄리스트 문학이 절정을 이룬 것은 17세기의 고전주의 문학시대로, 《잠언과 성찰》의 라 로슈푸코, 《팡세》의 파스칼, 《사람은 가지가지》의 라브뤼예르 등이 나왔는데 18세기 후의 보브나르그, 샹포르, 쥐베르 등도 이 계보에 속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있는 그대로의 인간 모습을 허심탄회하게 규명하고, 살아 있는 현실과의 접촉을 한시라도 잃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일상생활의 경험을 단편적으로 기술하고 이에 대한 처세훈(處世訓)을 기록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보편적인 인간상을 그리려 하였다. 몽테뉴의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속에 인간조건의 완전한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라는 말이 모랄리스트들이 보편성을 지향하는 근거이다.
프랑스 정신의 다른 산물(産物)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독일식 관념론과 영국식 경험론과의 중용(中庸)을 찾아볼 수 있다. 모랄리스트들이 인간을 반성함에 있어서 개념적 사유에 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있을 수 있는 것으로서의 인간을 그리려고 한 것은 그들이 개념에 대한 인간의 우위성에 확고부동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확신으로 그들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인간상을 즐겨 그렸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모랄리스트 전성기에서의 인간상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오네트 옴(honnete homme)이다.
프랑스 문학은 쿠르티우스가 말한 바와 같이 ‘인간에 관한 연속강연이며 인간학의 교정(敎程)’이므로, 모랄리스트라는 칭호는 소설가 ·극작가 ·사상가 ·종교가에게까지도 확대하여 쓰이는 경우가 많다. 몽테뉴의 친구 라보에시, 경건한 종교가 상 프랑수아 드 살, 철학자 데카르트, 우화시인 라퐁텐, 극작가 몰리에르, 가깝게는 아미엘, 베르그송, 알랭, 지드, 발레리, 보나르 등에서도 모랄리스트의 요소가 뚜렷하다.
프랑스 문학을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모랄리스트적 요소이며 수많은 모랄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것이 프랑스 문학의 근본적 특질이기도 하다. 한때 플랑드르 지방에서 장세니스트를 모랄리스트라 부른 시대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로메르의 도덕 시리즈는 모랄리스트들이 추구했던 인간 생활 관찰의 영화적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하듯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인간상', 즉 '오네트 옴'이 등장한다. 인간에 대해 관찰하고, 심오하게 탐구하고,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덕 시리즈 중 세번째 편인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영화 속에서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인물이 대표적 모랄리스트인 파스칼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20세기 사람이었던 에릭 로메르는 현대의 모랄리스트였다.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색과 성찰.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참으로 문학적으로 풀어낸 영화들. 검색하다가 어느 책에서 김혜리 기자였던지 이동진 평론가가 홍상수의 <낮과 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리얼리스트이자 모랄리스트인 에릭 로메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아말로 리얼리스트이자 모랄리스트였던 건가. 로메르의 영화가 너무 좋고,(때론 지나치게 난해한 대사에 한줄한줄 따라가느라 눈알이 어지럽지만) 그 영화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좋다. 다른 거 다 빼고, 지구 멸망이니자연의 눈물이니민족적 아픔이니 하는 것들 말고, 그냥 인간의 아주 사소하고 찌질하고 볼품 없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되뇌이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좋다. 그리고 그런 모랄리즘을 표현하기에 리얼리즘만한 효과있는 수단이 없겠지. 그래서 어디서 본듯한 인위적인 것들이 싫다. 그냥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덧붙여 앞서 말했던 책의 그 부분 뒤에이어진 부연 설명 중'홍상수는 리얼리스트일지언정 모랄리스트는 아니다'라고 하는데, 리얼리즘적인 부분에선 로메르의 그것과 90%이상 일치하지만, 모랄리즘적인 부분에선 딱히 모르겠다는 부분에서 어느정도는 동의하는 바이긴 하다. 그래도 그의 영화들을 보다가 문득문득 싸하게 느껴지는 깨달음들을 되돌아본다면 그가 모랄리스트와 거리가 매우 먼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그럴 것이다.즉, 홍상수는모랄리스트가 아닌 건 아닌데, 로메르스러운, 프랑스스러운 모랄리스트는 아니랄까. 한국형 모랄리스트인건가?
-네가 파스칼 이야기를 하니까 재밌다. 안 그래도 요즘 파스칼에 대해 다시 읽고 있거든.
-그래서?
-나는 아주 실망했어.
-계속 해봐, 진짜 재밌겠군.
-잘은 몰라. 파스칼에 대해서는 거의 외워서 알고 있는 거니까. 그렇지만, 나한테는 다가오는 게 없어. 전부가 아주 공허한 것처럼 느껴져. 나는 카톨릭 신자야, 아니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지. 그치만 파스칼은 카톨릭의 관념과는 맞지 않아. 그의 엄격함을 보면 불쾌해. 그건 분명 내가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일거야. 기독교 신앙이 그런 거라고 한다면 난 무신론자일거야. 넌 여전히 마르크스 주의자니?
-물론. 공산주의자에게 있어서 파스칼의 도박은 아주 의미있어. 개인적으로, 난 역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에 아주 회의적이야. 그렇지만 내기를 한다면, 나는 역사에 의미가 있다는 것에 걸어. 그니까, 난 파스칼적인 상황에 처해있는거야. 가설 A : 역사에는 의미가 없다. 가설 B : 역사에는 의미가 있다. 나는 A보다는 B가 더 맞을 거라고 전혀 확신하지 않아. 그 반대가 더 맞을 거야. B가 참이 될 확률이 10% 정도이고, A가 참이 될 확률이 90% 정도라고 가정을 해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B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왜냐하면 역사엔 의미가 있다는 그 가설만이 나로 하여금 제대로 인생을 살게 하거든. 내가 만약 A에 걸고, 더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B가 사실이라면, 나는 내 인생을 허비하고 말았을 거야. 그러니까 난 내 인생과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B를 선택해야만 해. 내가 틀릴 확률이 90%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수학적 희망을 가리키는 거야. 잠재적 이익을 가능성에 의해 나눈거지. 너의 가설 B의 경우, 그 가능성은 미약하지만, 얻어질 수 있는 이익은 무한해. 네 경우에는, 의미있는 삶을 가리키는 거지. 파스칼의 경우라면, 영원한 구원을 가리키는 거고.
-고르키던가, 아니면 레닌, 아니면 마야코프스키가 러시아 혁명에 대해 이런 말을 했어. 당시의 상황이 그들로 하여금, 가능성이 천 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것을 선택하도록 강요했다고 말이야. 왜냐하면 희망이라는 것은 운에 맡기고 그 기회를 붙잡을 때에, 그렇지 않을 때보다 무한히 더 커지는 법이니까.
-저는 파스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독특한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로 인해 교회로부터 비난을 받았죠.
-파스칼의 팡세는 비난받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의 얀세니즘은 비난받았어. 그리고 그가 시성만 된 것도 아니잖아. (...) 저는 기독교를 바라보는 다른 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과학자로서 저는 파스칼을 존경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과학에 가한 비난은 저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비난하지 않았어.
-인생의 말년에 그렇게 했어.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비난이 아니야. 그냥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내가 표현을 잘 못했나 보군. 예를 들어, 우리는 이야길 하다 보면 우리가 뭘 먹고 있는지에 대해 주의를 하지 않게 돼. 우린 여기 있는 최고급 샹뛰르그 와인에 신경을 안 쓰고 있어. 난 이걸 처음 먹어보는 데 말야.
-제일 고상한 클레몽 가문 사람들만이 마시는 거지.
-파스칼도 여기서 태어났으니까, 이 샹뛰그르를 마셨을 거야. 그가 금욕을 실천했다면 나도 그를 비판하지는 않았을 거야. 나는 금욕을 지지해. 사순절을 지키라고 말하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군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단지, 그는 자기가 마시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거야. 심지어 그가 병들어서 가장 양질의 음식을 가려먹었을 때조차도, 그는 자기가 뭘 먹고 있는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어.
-그의 누이인 질베르에 따르면, 그는 결코 '이것은 좋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대.
-그렇지만, 나는 말해. "이것은 좋다!" 기독교인으로서 말하는 건데, 좋은 것은 좋은 것으로 인정하라는 거야.
-"이길 확률과 비교해서 질 확률이 무한대가 아니라면, 주저하지 마라, 전부 걸어라. 네가 자기의 삶에 가치를 둔다면, 그렇게 해야만 하고 그러므로 이성을 단념해야 한다."
-맞아, 그게 바로 수학적 희망이지. 그건 파스칼에겐 언제나 무한해. "무한대 곱하기 0은 0이므로, 구원의 가능성이 없지만 않다면." 그러니까 이런 논쟁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겐 의미가 없어.
-그렇지만 믿음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다시 무한대가 되는 거야. 그러면 너도 그 가능성으로 돌아와야 할걸.
-물론이지. 어떤 가능성이 있고, 그 이득이 무한대라고 내가 믿는다면야.
-그럼 넌 그걸 믿어?
-그래.
-그렇지만 넌 아무것도 걸지 않았어.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어.
-아니, 난 뭔갈 포기했어.
-샹뛰그르 와인은 아니지.
-그건 이 이야기와 상관없어. 왜 내가 그걸 포기해야 하지? 내가 파스칼의 도박에 관한 주장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은 마치 복권을 사는 것처럼 고의적으로 계산된 교환이기 때문이야.
-그걸 '선택하기'라고 부를 수 있어. 넌 유한과 무한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해.
-내가 샹뛰그르를 선택한다고 해서, 신을 거부하는 게 아니야.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냐.
-눈이 오네.
-가짜 눈처럼 보인다.
-난 눈은 별로 관심 없어. 애들이나 좋아하는 거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싫어.
-그건 당신 마음이 아주 꼬였기 때문이야.
-당신이 진짜 걱정하는 건 당신의 체면이에요. 자정이 넘어 여자 방에 있다는 것, 단지 그게 두려운 거예요. 당신이 있어주는 것이 제가 조금 외로울 때, 저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사회적 인습을 넘어 살제적 관계를 맺을 수도 있지만 비록 우리가 다시는 만날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테죠. 제가 보기엔 그건 참 어리석고, 기독교인이 취할 태도가 전혀 아니에요.
-그건 종교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전 다만 당신이 피곤할 것 같다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뇨,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있잖아요.
-저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당신이 논점을 회피하려고 한다는 점이에요.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거죠. 당신은 부끄러워하는 기독교인의 얼굴과 돈 주앙의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요. 좀 지나치죠.
-그렇지 않아요. 난 사랑에 빠졌었어요. 그건 아주 다른 문제에요. 나는 인생을 살면서 둘 혹은 세 명의 여자를 사랑했어요. 좋아요, 넷일 수도 있어요. 나는 수년 동안 그 여자들과 지냈어요. 어쩌면 난 미친 듯이 사랑에 빠졌던 건 아니었을 거예요. 사실, 그랬을 수도 있구요. 자랑은 아니지만 그 여자들은 날 좋아했는데저는 물러났어요.
-겸손한 척 안 해도 돼요.
-제 말 뜻은, 사랑이란 상호적이지 않는 한 실재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전 어떤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과거 저의 애정사는 건전했고, 그게 무위로 끝난 것은 잘 된 거지요.
-당신이 그 사랑을 끝냈나요?
-아니요. 그렇다고 그녀들이 끝낸 것도 아니에요. 당시 상황이 그랬어요.
-그 상황을 이겨내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겨낼 수 없었을 겁니다. 당신은 항상 어떤 일들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게 헛되거나 아주 무의미할 수도 있어요. 아뇨, 당시에 그렇게 하는 건 불가능했어요. 때론 불가능하다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죠. 이해돼요?
-아주 잘요. 꽤 인간적인 말이지만 기독교적이진 않군요.
-그래요. 그렇지만 전에도 말했듯 기독교인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제 종교 이야긴 그만하죠. 도덕적 측면에서 본다면 여자들은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
-저도 압니다. "여자들"이란 표현이...
-다소 저속하죠.
-개별적 사례들을 일반화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긴 하지만 제가 만난 여자들은 그전엔 알지 못했거나 구체적으로 직면해보지 못 했던 새로운 도덕적 도전을 던져주었습니다. 저는 저에게 득이 되고, 도덕적 무기력으로부터 절 흔들어 깨워줄 어떤 태도를 취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당신이라면 도덕적 문제에만 신경 쓰고, 육체적 문제는 무시할 수 있었겠군요.
-그렇지만 도덕적인 측면도 그런 게 없다면 결코 생겨나지 못할 겁니다. 아, 물론 당신에겐 어떤 측면도 문제가 되진 않겠죠. 그렇지만 육체와 도덕은 뗄 수 없는 문제입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아마도 그건 악마가 쳐놓은 덫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거기에 빠졌죠. 그래요, 보기에 따라선 아주 완전히 걸린 거죠. 그렇지 않았다면 전 성인이 되었을 겁니다.
-성인이 되고 싶지 않으세요?
-전혀요.
-정말이세요? 모든 기독교인들은 성인이 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제 말 뜻은, 전 성인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아주 패배주의적인 태도군요. 그럼 신의 은총은 어때요?
-저에게 신의 은총을 느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죠. 옳든 그르든 모든 사람이 다 성인이 될 순 없고, 전 분명히 그렇게 될 순 없는 위인입니다. 제 성격이나 희망, 가능성을 놓고 보건대, 심지어 저의 평범함과 하나님께서는 내치실 게 뻔한, 저의 미적지근한 종교적 태도로 보건대, 저는 아주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성서적 의미에서 말하는 적어도 어떤 올바름의 삶은 살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고, 종교는 그 시대를 표상합니다. 저는 결코 얀세니스트가 아닙니다.
-제가 얼마나 박복한 여자인지는 그 일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실제로 결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되지 못했어요. 저는 제 인생의 남자를 찾았다고 확신했었어요. 어떤 남자가 저에게 다가왔는데, 모든 면에서 매력적인 사람이었어요. 의사였는데, 아주 눈부셨고, 삶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죠. 단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기쁨을 안겨준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은 자동차 충돌 사고로 죽었어요. 빙판에서 미끄러졌죠. 당신도 그럴 수 있어요. 모두 다 지난 일이죠. 과거는 과거일 뿐. 1년이나 지난 일이에요.
-그만둬요! 난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좋아요!
-내가 당신과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면 그건 우리가 앞으로 절대 만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일 거예요.
-이제야 진심을 이야기하는군요!
-서로 간에 아무 일도 없었으니, 장래의 문제로 골치를 썩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그래요, 그런데 우리 분명히 언젠가 다시 만나지 않을까요?
-안 그럴 거예요. 거의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예감이 그래요?
-아니, 논리적 결론이에요. 당신은 떠날 거고, (당장은 아니에요) 나도 아주 바빠질 테니까요.
-직장 일로? 아니면 청춘사업?
-물론, 청춘사업이죠.
-그럼 정말 그렇겠군요.
-나는 당신한테 지분거리는 게 좋아요. 어쨌든 당신은 내가 알고 지낸 마지막 여자가 될 거예요.
-나에 대해 알아야 할 게 더 있을 텐데요.
-그렇게 해서 당신이 행복해진다면야. 우리 전화로 통화할까요?
-당신이 전화해요.
-알았어요.
-프랑수아즈,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겠어요?
-그런 말씀 마세요.
-왜요?
-절 모르시잖아요.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해요.
-당신을 실망시킬지도 몰라요.
-클레몽에 간 적이 있나요?
-없어요. 툴루즈에 와 본적 있어요?
-한 번도 없어요. 그렇지만 또 모르죠. 5년쯤 지나면 가게 될지도.
-그래요, 또 5년쯤 지난 후에 오세요. 어서 가세요. 당신 아내는 내가 지금 당신한테 끔찍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
-5년이나 지났는데, 사람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니 놀라워. 그녀를 모르는 체할 수는 없었어. 게다가, 그녀는 아주 좋은 사람이야. 그리고, 내가 당신을 만나던 날, 나는 막 그녀의 집에서 나오던 참이었어, 그렇지만...
나는 "그렇지만 아무 일도 없었어"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프랑수아즈가 나와 관련된 어떤 일이 아니라, 그 여자와 관련된 어떤 일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가 바로 그 순간에...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그 말 대신에,
-그래, 그 여자가 마지막이었어. 이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그 여자를 만나다니, 참 이상하지?
-정말 재밌네요. 어쨌거나 그건 아주 오래전 일이에요. 그리고 우리 다시는 그런 얘기 안 하기로 했잖아요.
-그래 맞아. 그건 전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야. 우리 수영하러 갈까?
-수영할래?